[33호]이경해열사 5주기와 현 시기 농민운동의 과제
정광훈ㆍ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그런데 사람으로서 더 큰 설움은 사람이 사람한테 무시당한 기분 나쁜 설움도 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민중들은 그렇게, 그렇게 당하며 분노할 줄 모르고 참고 살아왔습니다.
땅 없어 배고프고, 소작내고 배고프고, 품삯 적어 배고프고, 일 많이 해서 배고프고, 돈 좀 있다는 놈에게 무시당하고, 공무원들에 당하고, 글깨나 안다는 놈들에게 무시당하고, 출세했다는 놈에게도 이래저래…. 자고로 농사꾼은 당하고만 살았지만 그래도 먹거리를 제공해 준 사람은 농민과 어민이지 않았던가.
지금 나는 갑오농민전쟁 때도 죽지 않고 내 힘으로 절대 빈곤을 해결하고, 그렇게 무시만 당하고 살아왔던 내가, 농민운동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역사를, 조국을, 변혁을 알게 되었다.
깊은 산골 외딴마을 나 홀로만 외롭게 농사를 지으며 알아준 사람도 자랑할 일도 주눅들일도 큰소리치며 과시할 일도 없었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러던 내가 누군가에 의해 농민대투쟁에 참여한 이후부터 나 홀로가 아닌 나를 찾은 것 아니었던가. 그때부터 나는 나 홀로가 아니라 농사일만 죽어라 하는 내가 아니었다.
나 홀로 방구석 집안에서 세상을 불평, 불만을 하면서 술로 세월을 보냈던 내가 아니었던가. 나는 무식한 놈, 촌놈,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고 나 스스로 나를 학대하지 않았던가. 그런 내가 명절 때가 되면 잘 나간 동창이나 친척이 와도 한 점 부끄럽지 않았다. 전에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탄생했다.
새로 탄생한 나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러 다녔다. 나 하나, 나 둘, 나 셋, 별자리만큼이나 많은 또 다른 나를 만나러 다녔다. 그러다가 추운 겨울날 영어로 써진 글씨를, “반대한다”고 기분 나빠하는 놈들이 많이 산다는 서울 광화문 네거리 오케스트라를 총지휘한다는, 미 대사관과 청와대 요새에서만 음모를 꾸민다는, 호텔신라와 하얏트 거기도 개떼들이 떼거리로 쫓아온다며 제주섬 콘벤션센타 거기도 축지법을 써 쫓아온다며, 총으로 인디언들 쏴 죽이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빼앗았던 미국 시애틀 세계의 전쟁을 다 일으키고 양민을 학살, 조정한다는 무섬증의 주심 펜타곤 워싱톤에서, 한국소와 돼지, 닭을 다 잡아 먹겠다는 몬타나 카우보이들의 눈 덮인 럭키산에서 나 홀로가 아닌 많은 또 다른 나와 함께 벌였던 투쟁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또다시 나 홀로 무시당하고 설움 당했던 자리 쓸쓸한 들판 논두렁 밭두렁에 나 홀로 서 있지 않는가.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시 찾았던 소중한 나를 다 잊어버리고 또 나 홀로 서 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열사의 주변부, 변두리에서 뭘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기타국민인가, 등외국민인가, 잠정국민인가. 나는 죽었는가, 식물인가인가…. 살아있다면 무슨 일부터 해야 하는가, 과거에 나를 발견해 주고 화려한 투쟁의 현장을 버리고 범죄자처럼 미제의 사건으로 처리하고 미완의 역사를 덮고 갈 것인가.
회원여러분, 언제 갑자기 다 죽고 식물인간이 되어 자고 있습니까요? 큰소리 아닙니다!
민중의 역사는 잠깐 멈출 수는 있어도 후퇴하는 법이 없는 법. 과거의 화려했던 혁명의 역사를 감추려 하는가. 황금보다 더 값진 역사와 성과물들을 왜 땅에 파묻어두려 합니까.
이제 나의 한계라는 분기점에서 조국과 민중해방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배낭을 다시 짊어져야 합니다. 나는 이 땅위에 게릴라의 전설이 있었다는 변혁의 길목에서 내가 하지 않으면 혁명을 할 사람이 없다는 각오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누가 우리들의 내적 권위와 명예, 세월과 물질을 보상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엄과 명예 권위와 긴 세월 민중의 역사를 찾아야 합니다.
활동가 여러분, 우리 주위에 ‘무공해 농민들’은 내가 그동안 활동했었던 것들을 잊지 않고 지금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해방시켜 줄 거라고 큰 제목이 될 것을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희망과 확신을 주지 않으면 그 누가 준단 말입니까.
활동가의 자세는 내가 마음먹기도 하고 결의했다고도 합니다. 아무리 백 번 천 번을 결의했어도 민중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이는 반딧불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의지가 있다고 해도 조국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애국심이 없이는 지속적이지 못합니다. 아무리 동료들이 강요하거나 설득을 해도 혁명적 변혁의지가 없으면 역사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아무리 돈으로 거드름을 피운다고 해서 알아준 사람도 높여준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천박함과 외로움 소외 분만 마음자리에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 가진 것도 많고 없는 것도 많습니다. 돈도 없고, 땅도 없고, 재력도, 권력도, 별로 인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도 많습니다. 사람도 많고 역사도 통째로 내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남들 앞에서 자격지심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정의만은 내편이며 위풍당당해야 하고 자랑스러워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들에게 유리하게 발전합니다. 껍데기도 벗겨지고 허위와 권위도 사라집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민중의 힘을 힘세다고 하는 몇 놈이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준 기회,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민중들의 축제의 기회를 놓쳐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만약 이 기회, 한미 FTA를 악마들의 손에 맡겨둔다면 역사의 저주를 금치 못할 것입니다.
여의도 ‘국회목장’에 떨어진 ‘FTA 공’을 어느 국회의원이 받겠습니까, 대선을 앞두고 어느 후보고 FTA를 아는 척하겠습니까. 우리들 변혁운동에 있어서 높은 도덕과 이념, 이론과 실천을 누가 거드름 피우고 우릴 비웃는 아니 무서워하는 허풍쟁이, 풍각쟁이 속물들이 우릴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선 높은 차원의 학습을 통하여 실천하는 지성인이 됩시다.
우린 그동안 발등에 떨어진 크고 작은 투쟁을 너무 많이 하면서 지적인 발전을 못했습니다. 이제 기회이고 필요할 때입니다. 내면의 이념 없이는 현상의 투쟁도 형식뿐이며 관행적이고 소모적인 사업만 할 따름입니다. 우리 투쟁을 통해 소심했었던 간땡이도 키웠고 허파에 바람도 넣지만 변혁적 혁명이론이 없으면 운동이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잠깐 왔다가 값없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돈 많은 사람 잘났다고 깝치는 사람 있지만, “나는 혁명을 위해 당당히 죽었다.”라는 흔적을 남기고 떠나갑시다. 이건 자기의 자랑만이 아니라 자손만대 민중의 역사의 자랑입니다.
지배자들은 최고 행정부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말단공무원들까지 하달되며 비정규직 공무원 15급 마을이장까지 바로 실천에 들어가 공무수행을 합니다. 좋은 정책이든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던 농민 따위야 희생을 당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일관성 있게 진행합니다. 민중들의 정항이 있건 말건 자연을 훼손하든 말든 공해가 있건 말건 농토가 들어가든 빈민가 사람이 죽든 쓸어버립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전농 대의원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서 일상적 결정기구인 상무위원회에서 정책이 결정되면 전국농민회총연맹이니까, 저 두메산골 외딴집에서 옥수수를 따든, 콩을 심든, 고추를 따든, 인삼을 캐든, 저 넓은 들판에서 트렉터를 몰든, 카길사 사료들로 소, 돼지, 닭, 오리, 메추리를 먹이든, 오리농법, 우렁이농법, 메뚜기농법을 하든, 막걸리농법을 하든 간에, 회의를 하든지, 교육을 하든, 방을 붙이든, 프랑을 걸든, 조직을 하든, 수련회를 하던 실천 임무수행은 곧바로 하고 있습니까?
지배자들은 시시때때로 농민과 노동자 민중들을 지배하고 수탈하기 위해서 별의별 전략과 전술을 밥만 먹으면 모사를 시작하는데, 우리는 언제쯤 “모여라” 호루라기 불기만 기다리고 있을까요.
변혁운동가들이 항상 하는 일들은 창조적이며 계획적이며 의도성과 조직을 가동할 줄 아는 지속성입니다. 우리 군 면지회 조직원이 많습니다. 누가 어떻게 가동하고 관리하고 있습니까?
변혁운동에 있어서는 해마다 선출되는 회장, 총무, 의장, 사무국장, 총장이 하는 것만 아닌 것입니다. 진짜 운동은 변혁을 위한 활동가들입니다. 지역 간부를 맡든 중앙간부를 맡든 상관없이 전 민중을 상대로 프로파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동안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시기 이때 어떻게 할 줄 모릅니다. 우왕좌왕 헷갈릴 때입니다. 모든 활동가들이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핸들을 돌려버린 이른바 ‘간부’였든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변혁의 길에 선 한번 간부는 영원한 간부이고 그 이름도 당당한 혁명가입니다. 어찌 거룩하고 존엄 높은 자리의 임무수행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존재는 그렇게 헤픈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이 아닙니다. 수 만년을 거쳐 오는 동안 진화와 보호, 수난과 역경, 절대 빈곤과 병마, 자연풍파를 겪어 오면서 이 존엄한 자리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나다.” 이렇게 당당한 나를 변혁의 현장에서 나는 없다고 하시렵니까?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깊은 철학적 깊은 맛이 있어야 사람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외딴섬 고립되어 살지 말고 동지들과 함께 힘을 냅시다.
우리는 지배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새로 태어나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선택의 기회는 자유롭게 열려 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큰일 한 번씩 치러 봐요, 사람이 쑥쑥 자라고 성장함을 느낄 겁니다. 내가 과연 그런 사변적 큰일을 해냈었던가! 감탄과 성장을 느낍니다. 나는 그냥 값없이 지나가지만 지배자들과 역사는 그렇게 값없는 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우리 왜 주워진 진주를 돼지에게 던집니까?
9월 11일.
9.11은 미국의 CIA 요원이자 석유재산가인 오사마 빈라덴이 체이서 맨하턴가 세계무역센타에 민항기로 도발한 날이며, 세계무역기구 WTO 각료회의를 반대하기 위해서 멕시코 칸쿤에 모여 데모를 1주일동안이나 무더운 날씨에도 밤낮 비를 맞아가며 분수대 잔디밭에 모였습니다.
전농을 위시해서 반세계화투쟁에 참여한 세계 민중들이 회담 장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4㎞전방에 휴전선의 철조망 군사분계선처럼 높이 처진 울타리위에 올라간 이경해가 “WTO가 농민을 죽인다!”며 자기 심장에 비수를 꽂고 철조망에서 떨어져 죽은 날입니다.
나도 못했습니다. 한국투쟁단장으로 대원을 이끌고 간 우리도 못했습니다. 이경해열사가 죽은, 죽은 날이 한국의 최대명절인 추석날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태풍이 불어 부산앞바다에 정박 중인 배들이 바다에 떠 있지 않고 모두 떠밀려 육지까지 올라온 사진이 멕시코 신문 1면에 나온 날입니다. 던켈 레슐레 회장의 손전화기를 받으며 세계 각료회의를 하던 WTO회의가 무산됐습니다.
죽음과 승리가 동시에 교차하면서 희비가 공존했습니다. 이경해열사의 죽음이 세계반세계화투쟁단들에게 환호와 함성 노래와 광란의 춤, 화려한 축제장을 차려주었습니다.
이경해열사가 그랬듯이 지금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고민해보고 실천하고 있는지, 활동가 몇이 모여 한탄하며 애로사항만 털어놓고 막걸리나 퍼고 있는데 나와 앉았는지 돌아봅시다.
아닙니다. 저 넓은 민중의 바다로 들길 산길 따라서 동지가 있고 민중해방을 기다리고 있는 민중들에게 희망의 열쇠를 전달해주려고 현장으로 가 봅시다.
실천은 해 본 사람만이 실패도 알고 성공도 압니다. 실천에 옮깁시다. 나는 오늘도 저 산 넘어 어디엔가 살고 있는 순박하고 정직한 부인과 아이들이 살고 있는 가정집으로 나는 간다. 선물은 없지만 심장에 뜨거운 정열을 선물하러 간다. 혼자 아니라 둘이 아니라 셋이 함께 간다. 녹슬은 트럭을 카고 농민가를 부르며, 아스팔트 농민가를 부르며 신명나게 간다. 누구도 만나고 누구도 만나고 내일 또 만난다.
모든 개인과 조직 부문과 지역운동은 전국 변혁운동을 하는 것이고 민중해방운동을 하는 것이다. 객기나 오버(과욕)할 필요도 없다. 소심할 필요도 없다. 지속적인 진실의 행함만이 그들의 마음을 끌어낼 것이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좋은 기회는 없다. 지배자들은 침몰할 줄 알았던 배에서 생쥐들처럼 먼저 바다에 뛰어내려 헤엄치거나 다른 배로 올라 타 버렸다. 배 밑창에 타고 있는 현장 당원들이나 민중 따위야 죽던 말든 나만 살면 된다. 이런 와중에 굿만 보고 비웃을 것인가. 아니다. 대선과 총선을 FTA로 승리하자! 지침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내일은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달력에 기록하자.
회원여러분, 지금보다 활동하기 자유스런 기회가 어디 있었습니까!
스스로 채찍 들어 “혼자서라도 가자!”를 외치며 탄력성 있고 생동감 넘치는 제2연료탱크에 불을 놓자. 뭐로 보나 내가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그리고 활동가들 회원들 만나거든 나는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했고 술맛이 거나하기 전에 첫 술잔 들기 전에 하자. 2003년~2004년 전 반세계화에 몸을 던진 이경해 뜻을 상기하며 살아서 변혁운동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고, 오늘도 고추 따놓고, 농약치고, 잠깐 쉬는 시간 내일은 누구를 만나러 갈까를 꼭 수첩에 이름을 적고 계획에 기재를 남기고 소감을 남기자.
나는 저 고개만 넘으면 저 산 너머 어딘가에는 우리를 환영하고 기다리는 민중들의 함성과 해방춤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내일도 내 일 다 하고 누구랑 누구를 만나러 간다.
민중을 해방하러 가자, 맛나게 가자!
adm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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