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호]농민통일운동의 새지평을 열 것을 다짐하며
고수전ㆍ제주 1기 농민통일선봉대 대원
날이 더워지기 시작할 때쯤이면 회의 자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2007 농민 통일선봉대’, “지역별 일인씩 결합하고 전국을 누비며 농민통선대로서 통일의 물꼬를 틀자”는 일명 통선대.
농민회에서 일한 지 삼 년째. 여름이 올 때 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통선대를 올해는 기필코 가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했다. 거창하게 결의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3년의 상근활동을 마무리하고 지역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꼭 거쳐야 할 관문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농민통선대에 가겠노라 전화를 했다.
시간은 어느새 통선대 발대식을 가지는 8월 5일. 하루 늦게 첫 번째 목적지인 강원도부터 결합하기로 하고 비행기를 예약하려 전화기를 들었지만, 역시나 비행기 표가 없다. 어찌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첫날을 까먹더라도 다음 일정부터 결합하기로 하고 청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청주에 도착하고 하늘을 봤다. 먹구름이 잔뜩 낀 것이 심상치가 않았지만 “8월처럼 산다”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충북 음성행 버스를 탔다.
충북 음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하루가 훌쩍 지나고 저녁이었다. 통선대원들은 이미 통일농활을 끝내고 이후의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사를 끝마치고 통선대에 합류하는데 솔직히 놀랐다. ‘우와, 통선대원들이 많네.’ 9박10일의 일정이 엄청 재미나겠다는 생각에 설렜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는데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학교 다닐 때부터 통선대하면 같은 옷에 같은 모자, 많은 숫자가 통선대 찬가를 부르며 줄을 딱 맞춰 걸어 다니는 게 일반적인 모습인데, 농민통선대는 좀 달랐다. 농민통선대 옷을 입고 있는 대원이 고작 넷이 전부라니! 어제는 지역 농민회원들이 결합해서 많아보였던 것이다. 역시 농사꾼이 열흘가까이 농사일을 작파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된다. 통선대의 하루는 오전엔 통일경작지에서 통일농활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선전전, 저녁은 지역농민회와의 간담회를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한다.
비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경기도연맹 회원들과 이마트 투쟁을 진행하고 통일농사를 짓고 있는 화성으로 이동했다. 우렁이농법으로 경작하고 있는 화성의 통일경작지는 농활을 진행하려 했지만, 비가 많이 오기도 하고 논 관리를 너무 잘 하셔서 피사리 할 것도 없어 간담회를 진행하기 위해 농민회 사무실로 이동했다.
충남에서는 통일경작지로 바로 이동, 논두렁을 정리하고 간간이 보이는 피 뽑는 작업을 진행했다. 논이 없는 제주도에서 자랐기 때문에 피와 벼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다른 대원들은 열심히 피를 뽑고 있는데 난 열심히 벼 베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슬그머니 낫을 두고 옆에 풀을 헤집고 다니면서 풀만 벴다.
그렇게 비와 함께 통일농활을 마치고 난 후, 3년 넘게 투쟁하고 있는 그랜드호텔노조에서 노동자통일선봉대와 함께 간담회를 진행하려고 할 때, 긴급한 투쟁소식이 도착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충남에서 활동하던 노동자 통일선봉대가 이랜드 투쟁 과정에서 연행되었다는 것이다. 당장 아산경찰서로 달려갔다. 이미 연행된 동지들을 구출하기 위한 긴급집회가 진행되었지만 그날 노동자 동지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충남을 뒤로하고 다시 전북 군산으로 이동하고 군산에서 두어 시간가량 선전전을 진행하고 군사 미군기지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또 다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진행한 군산미군기지투쟁은 연행자도 부상자도 없이, 4시간 여 만에 마무리 되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고창, 고창농민회 회원들과 간단한 간담회와 걸쭉한 술자리로 전북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통선대원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온 몸으로 통일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전남 함평에서 순천으로 이동하는 통선대는 그야말로 비를 몰고 다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통일경작지는 너무 잘 관리되어 있어서 손 댈 곳이 없었다.
▲ 사진제공ㆍ곽재봉 ⓒ농민의길
마침 통선대가 순천을 방문한 그날 노동자동지들이 홈에버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집회에 참가해 노동자 동지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그날 저녁 진행된 <순천시통일한마당>에도 함께 했다.
다음날 아침, 내 기억으론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니었다 싶다. 전남 순천에서 경북 봉화로 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차 안에서 잠들고 깨고, 또 잠들고 깨는 동안 어느 새 자는 것조차 힘들다 싶을 때가 되었으나 반밖에 안 왔다는 소리를 듣고 거의 기절하고 말았다.
봉화역시 통일경작지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바로 상주로 이동했다. 상주에서 농민회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다음날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고 통일농활을 진행하고 홈에버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을 지지방문하고 그렇게 다시 서울로 통선대의 일정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서울에 도착한 통선대 대원들은 다음날 있을 통일한마당에서 농민회원들에게 보여줄 율동을 밤새 준비하고, 815대회를 시작하는 용산미군기지투쟁과 통일한마당 등 8월15일 대회를 멋있게 마무리했다.
기억을 더듬어 통선대를 몇 마디로 정리한다면 비와 차타고 이동하기, 밥먹기, 2:8, 그리고 통일의 열기로 정리할 수 있다. 내가 보낸 열흘의 시간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보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평생 함께할 소중한 동지들을 만날 수 있는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통선대가 전북 고창을 방문했을 때, 그 자리에서 통선대를 결의하고 다음날부터 끝까지 함께 했던 고창 영길이형, 아들과 함께 결합하셔서 부자의 힘을 보여준 부여의 홍교선배님, 그리고 방학이라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을 텐데 아버지와 함께 통선대 결합한 홍교선배님의 자랑스런 아들 의갑이. 통선대 대원들에게 2:8(소주2, 맥주8)을 가르쳐주는 바람에 통선대의 술자리에 2:8이 빠질 수 없게 만든 이진구 통선대 부대장님.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옆에서 힘내라며 늘 용기를 불어넣어준 상주의 만성이형, 그리고 늘 웃음을 선사했던 상주의 재봉이형, 이진구 부대장님이 가르쳐 주신 2:8을 끝까지 고수하시면서 어느 곳에서나 열심히 일하신 강원도 홍천의 남궁종순부회장님, 통선대 대장으로 하루하루 힘든 일정 속에서도 대장으로써 대원들과 함께 신나는 율동까지 마다 않고, 통일한마당에서 통선대 보고를 하시다 통선대의 끈끈한 동지애와 통일의 가슴 뛰는 그날을 생각하시다 결국 눈물을 보이신 통선대의 자랑스런 장동화 대장님. 그리고 지역에서 함께 해주신 전북 구윤희 조통위원장님과 지역농민회 식구들과의 만남은 정말정말 소중했다.
▲ 사진제공ㆍ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농민의길
통선대를 다녀온 후 지난 8월 23일 통선대 전 대원들이 다시 강원도 홍천에 모였다. 통선대 해단식을 진행하지 못했기에 홍천에 모여 해단식겸 대장님의 평양방문을 배웅하는 자리로 함께 하기로 했다. 나 역시도 원주행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통선대 기간의 기억들을 다시 한 번 공유하고 금전적인 어려움으로 평양행을 포기하실 뻔 했던 장동화 대장님을 통선대의 결의로 보내드리기로 했다. 아주 어려운 결심이었고, 정말 멋진 결의였다. 장동화 대장님은 통선대의 높은 통일의 의지를 가슴에 품고 지금쯤 평양에 도착했을 것이다.
홍천에서의 하룻밤은 통선대 기간 내 느끼지 못한 많은 것들과 많은 결의들을 세워내기에 충분했다. 통선대 대원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지역에서 통일주체로 자리 잡을 것을 결의했고, 전 통선대원들은 이번 1기 통선대를 시작으로 2008년 2기 통선대의 선봉에서 다시 모이기로 결의도 했다. 나에게 통선대는 3년의 도연맹 상근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다시금 지역에서 농민회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 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렇게 몇 장의 글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소중하고 뜻 깊고 결의 높은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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