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호]11월 민중총궐기! 2002년! 2007년!


천병한 조직교육국장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100만 명을 조직해서 세상을 들었다 놓자고 제안되고, 준비되기 시작한 민중총궐기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런데, 현장의 간부들은 5년 전 2002년 대선 때 추진했던 30만 농민대항쟁과 비교하면서 분위기가 안 뜬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

“5년 전 서울 대회에 참가 했던 분들 중에 돌아가신 분도 상당히 많다.”
“5년 전에 50대 중반이던 사람들은 환갑을 넘긴 사람도 많이 있다.”
“5년 동안 새로 들어온 젊은 농민은 거의 없다.”
그러면서 전과 똑같이 준비해도 숫자는 줄어 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5년 전으로 돌아가서 되짚어 보자. 2002년 초 처음 30만 군중투쟁이 제기되었을 때 대부분의 간부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서울 농민대회에 참가자수의 규모는 1-2만 명이었고, 최대로 조직했을 때 3만 명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시군농민회별로 버스 몇 대를 조직하는 개념에서 면지회별로 버스 몇 대를 조직하는 개념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조직화의 목표였다.
하지만, 개방농정으로 인해 무너질 대로 무너진 농업에 WTO 개방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 옥죄어 오는 상황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잘한 투쟁을 많이 하는 것보다 모든 것을 걸고 한판 큰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의를 내고, 여름부터 마을간담회를 상당히 많이 진행했었다. 이 또한 새로운 대중 선전사업의 방식이었다. 이전까지 이장, 새마을 지도자에 대한 해설사업을 중심으로 대중을 교양하고 조직하는 방식에서 면지회간부들이 일반 농민을 직접 만나고, 교양해설하는 사업을 처음으로 진행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쑥스러움에 주저하는 간부들이 많았지만, 갈수록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농민들의 반응에 더욱 힘을 받으면서 폭발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간부들의 연령도 조금씩 올라갔고, 농사량도 많이 늘어났다. 농업보호 정책을 추구하는 강대국들 간의 양보 없는 싸움과 제3세계의 반대운동이 겹쳐져 WTO는 사실상 좌초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미FTA의 전주곡이었던 한칠레 FTA가 추진되었고, WTO 쌀 재협상이 추진되었다. 1년의 3분의 1이 넘는 날을 상경해서 투쟁을 하기도 했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열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함께하기도 했었다. 힘들고 어려운 투쟁 속에서 간부들의 생활조건은 더욱 악화되고, 조금도 더 나아지지 않는 농업정책으로 인하여 농민들의 반응도 무덤덤해지는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한미FTA 추진되어 협상단간의 타결이 이루어지고, 지금은 양국의 국회비준만을 남겨 놓고 있다. 그렇게 5년이 흘러 왔다.

2007년의 시작은 암담함과 함께 희망으로 시작했다. 한미FTA 협상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은 채 굴욕적인 타결로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대선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대선이 되면, 모든 국민들은 저마다 정치적 관심을 가지게 되고, 지금까지는 정치에 냉소적이었더라도 투표행위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결국 정치적 판단과 입장을 가지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 상상 속에서의 희망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희망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 전 민중의 의제를 가지고 모여 대선이 정치꾼들의 놀음이 아니라, 민중의 의지와 요구에 의해 관철되는 대선을 만들자고 민중총궐기를 추진해 온 것이다.

“민중총궐기 투쟁의 취지와 의미에 맞게 준비되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민중총궐기의 성패는 마을간담회에 있다고 년 초부터 노래를 불렀건만, 그렇게 강력하게 확산되어 진행되지 못했다. 일 년을 관통하는 투쟁의 흐름, 기조, 전망을 선명하게 제시하지 못한 중앙의 탓도 있을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최근 전농의 정치사업으로 인해 기성 정치집단의 입김에 의한 견제, 배제, 거리두기의 흐름이 만들어져 활동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얘기도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해지자. 이런 현상이 모두 틀린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매달려 정체된다면 농민운동의 미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실이나 핑계나 찾으며 대중을 만나고, 지역 인사들을 만나는 것에 주저하는 모습을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 전농의 농업과 농민에 대한 사랑이 지극히 순수하고, 우리의 실천 방향이 틀림이 없다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자.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어떤 험담과 방해를 하든 당당히 맞서 나가자.  대중을 옳게 인도해야 하는 우리의 책임을 다하자. 그것이 바로 민중총궐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 간부들의 자세이다.

현장의 간부들을 만나고, 얘기를 나누다보면 한편으로는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직화와 총궐기 성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미 커져 있는 대중투쟁의 그릇은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믿음일 것이다. 2002년 30만 민중총궐기 투쟁을 하면서 농민운동에 참여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또다시 자신이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면 꼭 참여하려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작년에는 올해보다 마을간담회 준비정도나 제반 준비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7만 명 참가를 했었다. 그런 농민대중의 호응, 열의가 변치 않는다고 확신하고 거기에 우리의 힘을 가하자. 이미 활동 속에서 체득한 대중 조직화의 공정을 제대로만 발휘한다면 남은 기간이 비록 얼마 안 되지만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운동은 결코 죽지 않는다. 온갖 악조건에서도 생명을 잃지 않는 민들레처럼 우리의 농민운동도 결코 죽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홀씨가 되어 퍼져 나갈 것이다. 대선시기에 전농이 제안하는 농정공약은 단지 눈앞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토론하고 연구해서 내놓은 우리의 중장기적인 농정대안이다. 그 농정대안을 더욱 연구하고 풍부화시켜 우리의 무기로 삼고, 반드시 관철시켜 내기 위한 투쟁을 끈질기게 전개해 나갈 것이다. 바로 11월 민중총궐기가 그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암흑에서 여명으로 다시 해돋이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통일의 기운이 우리 농민운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의 투쟁’을 하는 농민운동에서 통일의 세상을 예비하고, 민족의 먹을거리를 지키고 식량주권과 삼천리강토를 지키는 미래 지향적인 농민운동의 시작을 압도적 다수 농민형제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온 세상에 선언하자.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의 정치적 격변기를 농민, 농업의 활로를 찾는 계기로 만들어 가자.
admin 기자

Comments